<오늘의 명언> _ 조지 패튼 (George S. Patton)
"성공의 비결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Success is the result of setting goals and working towards them."
미합중국 제5대 제15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스미스 패튼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게이브리얼에서 1885년 11월에 태어나서 1945년 12월에 향년 60세에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하이델베르크에서 작고하셨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스미스 패튼'이 남북전쟁 당시 남군 기병대 대령으로 활약했던 인물로서 그는 대대로 군인 집안에서 유복하게 성장했습니다. 임관 직후 터진 멕시코 내전에 참전하였고,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원정군 사령관이 된 퍼싱 장군의 발탁으로 미군 최초 기갑부대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철저한 기동 전의 신봉자가 되었고 연설 도중 욕설을 즐겨 사용할 정도로 불같은 정열을 드러냈습니다.
횃불 작전에서 프레덴덜 장군과 함께 참전했지만 튀니지에서 패배했고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2군 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전투 직전, 부하들에게 이기지 못하면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말라고 사기를 붇돋우면서 엘 게타르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작전(1942~1943)을 마치고 시칠리아에서 주둔하고 있는 제7군을 지휘했으며 휘하의 기갑부대를 신속하게 움직여서 팔레르모를 점령했습니다.
1944년 그는 대담한 발상과 거침없는 전진, 통상적인 군대의 규칙을 무시한 작전을 벌여 휘하의 제3군을 이끌고 북부 프랑스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하면서 군 생활 중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8월 이후 마옌, 라발, 르망, 랭스, 샬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12월에는 벌지 전투에서 바스토뉴를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45년 1월 말, 패튼의 부대는 독일 국경선에 이르러 3월 트리어를 점령했습니다. 열흘 동안 모젤 강 북쪽 지역을 정복하였고 제7군과 합류해서 독일군 10만 명을 포로로 잡으며 자르와 팔츠 지방을 점령했습니다.
이러한 성공 뒤에는 패튼의 행동에 대해 민간인들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에서 쉬이 여겨 무마해 버렸고 1943년 8월 전투신경증에 걸려 병원으로 후송된 병사를 때린 일과 연합국이 독일에서 벌인 탈나치화 정책에 공공연히 반대하다가 1945년 10월 제3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아우토반을 달리다 만하임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하이델베르크 병원에서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그의 군 인생을 전부 칭송할 수 없지만, 인생 전반을 이끈 한 가지 모토가 바로 위의 명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다면 조지 패튼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방법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유람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몇몇 동네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동참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쌩 나아가는 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굉장히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 시간들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사이, 소년은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모퉁이를 막 돈 자동차 앞 범퍼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어느새 주변은 아이들과 몇몇 행인들에 둘러싸였고 그중 일부는 응급구조를 요청했습니다. 소년은 구급차에 실려 대형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몇 개월 후, 소년은 목발을 짚고 퇴원했습니다. 간간이 통원 치료를 받는 조건이 붙여졌습니다. 소년은 그날의 사고로 인해 후유증이 생겨 자전거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간혹 하교 후,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금세 고개를 내젓고는 그 모습을 등지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한 시점에 잘못된 투자와 그로 인한 늘어난 부채, 가로막힌 현금 흐름, 그리고 지독한 경기 침체로 소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소년과 가족은 작은 평수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풍족하게 교육받았던 사교육도 일절 받을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년 주변의 친구들은 소년과 거리를 유지했고 그런 학교 생활을 더더욱 적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점차 쌓여가는 심리적 충격과 고립감, 무력감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의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안타까워하고 걱정했습니다. 수일이 지나도 소년의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이를 두고만 볼 수 없는 부모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소년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회유하거나, 기분 전환으로 여행을 가지거나 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야속한 시간이 흘러 회사의 경영난과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는 소년을 감당할 수 없는 소년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소년을 뒤로한 채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소년의 어머니는 남편의 골분이 들어 있는 함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년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탓으로만 여겨졌습니다.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소년은 그동안 손 놓았던 학업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학습 계획도 세워가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성인이 되면 어떤 직업을 가질지 그 직업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세부적인 계획도 세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소년은 처음 계획했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세웠던 여러 계획 중 몇 가지를 실행했습니다. 봄바람이 소년을 스치듯 불었습니다. 대학 정문을 나서자 늘어선 카페 사이로 작은 골목 어귀쯤에 작은 자전거 판매점이 보였습니다. 근처로 다가간 소년은 가게 앞에 일렬로 줄지은 여러 대의 자전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갔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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